신8:1-6
##나를 만드는 사건
각 사람들은 가장 원초적인 경험, 지금의 나를 만든 체험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의 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축적되었지만, 삶의 방향을 바꿔 놓았던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사건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누군가에게는 그 순간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일 수도 있고, 이별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와의 만남이나 결혼이 그 사건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니면 군대 시절에 경험했던 고생이나 재수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이 그런 사건이 되기도 합니다.
개인도 그렇지만 공동체도 그런 사건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6.25와 같은 전쟁이 그런 사건이 될 수도 있고, 여러 정치적 격랑이 그런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한편 88올림픽이나 2002년 올림픽과 같은 행사가 전환점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큰 사건을 경험하고 나면, 이 사건을 바탕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전 세계가 참전했던 6.25를 근거로 세상을 바라보는 세대와 전 세계에 국력을 과시하던 월드컵을 근거로 세상을 바라보는 세대는 다른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스라엘의 원초적 사건
이스라엘에게는 어떤 사건이 그런 원초적인 경험일까요? 성경에는 수많은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 모든 사건이 그들의 정체성을 이루어가는 사건이었지만, 모두가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천지 창조를 첫 번째 사건으로 두고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사건을 그런 원초적인 사건으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 사건은 단 1회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서 단 한번 있었던 사건이었지만, 그 사건을 통해서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노예가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자들이 땅을 갖게 되었습니다. 법 없이 짐승처럼 살던 자들에게 하나님의 법이 주어졌습니다.
오늘 말씀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그 백성들에게 다시금 하나님이 하셨던 일을 기억하도록 권면하는 장면입니다. 40년간의 광야에서 방랑을 마무리 할 때입니다. 출애굽 초기의 열정과 환호성은 사라진지 오래였고, 오랜 세월 걷다보니 지친 마음에 어깨는 더욱 무거웠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40년간 길어진 이유가 죄 때문이었기 때문에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모세의 말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셨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광야, 척박한 땅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돌보셨습니다. 그리고 늘 그들보다 앞서가시며 그들을 구름으로 불로 그들을 돌보아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유랑하는 동안 명령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먹을 것이 필요한 것을 아셨고, 입을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갈길도 먼저 가며 그들을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위기가 되면 늘 출애굽 사건을 떠올리며 자신들이 어떤 이들인지 기억하고 되세기고자 하였습니다. 그 사건이 100년도 아니고 1000년도 더 된 일이라 할지라도,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부름받은 공동체로 여겼습니다.
이 체험이 그들의 방향을 정하였습니다. 이 사건이 그들의 미래를 만들어 갔습니다. 과거의 사건, 잊어버릴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끊임없이 기억하여 오늘의 일로 여기며 우리가 누구인지 정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잊어버린 다면 그들은 더 이상 이스라엘이 아닌 것입니다. 혈통은 이스라엘의 자손이라 할지라도, 그 사건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 사건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같은 공동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모세는 이제 40년간 광야생활을 마무리 하면서 다시 한 번 그 사건, 하나님의 인도하신 그 일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목숨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더 이상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말을 하고 싶었겠습니까? 마지막인 만큼 할말이 많았겠지만, 그가 자기 백성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기억하라였습니다.
이 사건을 기억한다면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하나님께 나아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일들을 기억한다면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기억이야 말로 모세의 마지막 당부였던 것입니다.
## 초대교회의 원초적 사건
초대교회에게 원초적 사건은 무엇입니까?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을 함께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재밌는 이야기로 배꼽빠지게 웃는 일도 있었을 것이고, 이런 저런 일 때문에 제자들끼리 싸우는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하셨던 말씀 하나하나, 있었던 일도 그들에게는 소중하게 남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일들 중에서 초대교회는 최후의 만찬을 그 원초적인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였던 그 날을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 식사의 의미를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순간의 의미를 알고 계셨습니다. 이날이 지나면 이제 떠나야한다는 것을, 자기와 함께 했던 자들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그 마지막 날을 기념하고자 하셨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중이 떠중이 들이고, 갈릴리 촌놈들에 별볼일 없는 놈일지 모르지만 3년간 그들과 함께 하며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날 밤을 그냥 보내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섬기시는 분이었지만 아무래도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는 다는 일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며 새롭게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전 같으면 평범한 유월절 전날 식사였겠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식탁의 자리에 의미를 부여하시며 새로운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 자리는 편한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하는 무리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식사의 자리를 마련케 하셨습니다. 이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 잔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눅22:19)고 말씀하십니다. 또 잔을 가리켜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마지막 순간에 제자들에게 기억하라고, 기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60년-70년 인생에서 3년 이란 시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이 바뀐 시간이라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보잘 것 없던 이들, 어떤 꿈도 꿀 수 없던 자들이 꿈을 꿀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다 같은 시간이 아닌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순간을, 이 사건을 기억하였습니다. 비록 몇 시간 후 예수님을 잡으러 오는 로마 군병들을 피해 도망쳤지만, 이 순간만큼은 잊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전에는 평범한 명절 식사자리였지만, 더 이상은 평범한 식사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주님과 언약을 맺은 시간, 주님을 기억하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 성찬의 의미
성찬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성찬식이 얼마나 거룩한 자리인지, 얼마나 중요한지, 또 이 성찬의 떵이 우리 영혼의 생명의 양식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내 인생을 바꾸셨다는 고백이 없다면 이 자리는 의미없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그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듯이, 예수께서 우리 인생의 분기점이란 고백이 없다면 우리가 먹는 떡과 포도주는 그리 중요한 것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는 다니고 있고, 이런 저런 모임도 나오고 있지만 예수께서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신다는 고백이 없다면 이 떡과 포도주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우리의 주인이심을 인정한다면, 잘은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내 인생을 인도하고 계신다고 고백을 한다면 이 자리는 중요한 자리가 될 것입니다. 마치 결혼 기념일이 돌아오면 그 날을 특별히 여기지 않습니까? 남들에게는 365일 중 하루일뿐이고 별 다를 것이 없는 날이겠지만, 부부에게는 특별한 날이 되듯이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고백이 있다면 이 성찬의 자리는 떡과 포도주 그 이상이 될 것입니다. 결혼 기념일이 지난 날의 추억을 곱씹어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앞으로 더욱 사랑하겠다는 다짐이 포함합니다.
마찬가지로 성찬은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주님을 기억하는 자리가 되지만, 동시에 우리를 이끌어 가실 주님을 기대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맛보게될 천국 잔치를 미리 맛보는 자리인 동시에, 그날까지 우리가 주님의 사랑에 걸맞게 살겠다는 다짐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은 주님이 베푸신 성찬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 원하십니다. 주님께만 특별한 시간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이 시간이 특별한 시간으로 다가오길 원하고 계십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억하였듯이, 제자들에 예수님과 함께 했던 그 날들을 추억하였듯이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의 식탁에 초대하고 계십니다. 그 식탁에 나아와 그 사랑 안에 먹고 마시는 자들에게는 이 포도주와 떡을 통해 예수님의 피와 몸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성찬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며,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