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병으로 징집되었던 몰트만은 1945년 독일의 패망으로 연합군의 포로가 되었고, 스코틀랜드에서 몇 년간 포로 생활을 하게 된다.)
전쟁의 폐허와 암담한 포로생활로 인한 우울증 말고도 우리 민족의 이런 치욕(유대인 학살)을 지고 살아야 한다는 싶은 수치감이 따라다녔다. 이런 치욕은 실로 우리의 숨통을 조여 놓았고, 이런 압력은 나를 오늘날까지 누르고 있다. 내가 굴욕감으로부터 새로운 희망으로 전환하게 된 것은 두 가지 경험 때문이다. 하나는 스코틀랜드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인간적인 만남이고 다른 하나는 성서이다.
어느 날 우리의 포로수용소에 마음씨 좋은 군목이 와서 우리에게 몇 마디 말을 건 다음에 성서를 나눠 주었다.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몇 개의 담배를 더 원했을 것이다. 저녁마다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성경을 읽어나갔다. 그러다가 나는 탄원시를 읽게 되었다. 시편 39편이 나의 시선을 특히 강하게 사로잡았다.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말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대저 나는 주께 객이 되고 거류자가 됨이 나의 모든 열조 같으나이다. (시39:2)
이 말씀은 내 영혼으로부터 들려왔으며, 내 영혼을 하나님에게로 인도하였다. 내게 갑작스러운 깨달음이 일어났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저녁마다 이 말씀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마가복음을 맥락을 짚어가며 읽어가던 나는 수난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는 예수의 죽음의 외침을 들었을 때,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너를 완전히 이해하며, 너와 함께 하나님을 향해 외치며, 너와 똑같이 버림을 받았다고 느꼈던 한 사람이 존재한다. 나는 시련에 처한, 버림 받았던 예수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가 나를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난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제요, 나와 함께 이 어두운 골짜기를 걸어가는 길동무요, 나의 고난을 지고 가는 친구다.
나는 다시금 삶의 용기를 되찾았다. 부활을 향한 위대한 희망이 서서히, 하지만 더 확실하게 사로잡았다. 그리스도에 대한 이러한 신앙도 갑자기,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내게 점점 더 중요한 것이 되었다. 나는 수난의 이야기를 읽고 또 읽었다.
(중략 …)
60살이 지난 오늘날까지 나는 확신한다. 1945년 그 당시에,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포로로서 영혼의 포로로서 영혼의 수렁에 빠져있던 나를 예수는 찾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