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9 새벽(시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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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예배 설교 시89:1-45
[찬송] 찬송가 401장, 찬송가 401장 찬양드리심으로 새벽기도를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겠습니다.

기도 5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지난 밤에도 우리를 주의 품에 안아 지켜주시고, 또 새로운 날을 허락하사 이 자리에 나와 기도로 시작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저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와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역병이 창궐하는 가운데, 제한된 상황이나마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줄 압니다.

그러나 주님,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매번 뉴스에서 들리는 소식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이들임을 고백합니다.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가리지 않고 퍼져가는 역병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주님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로 겸손케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괜찮다는 것이 우리의 자랑이나 교만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시고,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게 하시고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이들을 향한 공감과 연대로 나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코로나로 생업에 어려움에 겪는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들이 임하게 하여 주시고, 바이러스로 고통받는 자들에게는 적절한 치료가 제공되며 회복의 날이 속히 오게 하여 주옵소서. 방역을 위해 애쓰는 모든 의료진과 당국을 주님께서 기억하여 주시고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그리고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주께서 구원의 방주로 허락하신 우리 산성교회를 붙잡아 주시옵소서. 이 여정에 함께 하며 동행하고 있는 산성의 모든 성도들을 주님께서 기억하여 주시고, 이 가운데 하나도 빠짐 없이 믿음의 항해를 감당하게 하여 주옵소서.

구하옵기는 원로 목사님을 기억하사, 신원을 강건케 하시고 주님과 늘 동행하게 하옵소서. 담임목사님을 주님께서 기억하여 주시고 주님의 뜻을 분별하여 잘 전하게 하시고, 말씀의 권능으로 세우고 살리는 일들을 잘 감당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당회원들을 기억하사 주님의 역사를 분별하며 동참하게 하시고, 여러 성도들을 권면하며 교회의 여러 일에 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모든 교역자들이 담임목사님을 도와 맡겨진 영혼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며 사랑의 수고를 기꺼이 감당하게 하시고, 기쁨으로 씨를 뿌리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제직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섬기는 부서들 마다 섬김의 기쁨이 넘치게 하시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그 속에는 친밀한 교제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구역들을 돌아보아 주셔서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피난처가 되게 하여 주시고, 수고하는 지역과 구역의 일꾼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비록 지금은 코로나로 많은 것이 제한되어 있으나, 그 속에서도 사랑을 실천할 방법을 찾게 하여 중보소서.

우리의 다음 세대가 자라가고 있는 교육부서들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기대가 넘치게 하시고, 이 세상 속에 위축되지 않고 담대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세워지게 하시고, 먼 훗날 시간이 지났을 때, 산성의 지붕 아래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렇게 자랐다고 여러 사람들이 고백하게 하옵소서.

또한 먼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을 주님께서 기억하여 주시고, 그들의 사역와 가정가운데 평안을 주셔서 안전한 가운데 그 모든 사역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저희가 중보하는 선교사와 기관들이 있사오나 주님, 우리가 그 사정을 다 알지 못하고 때로는 돌보지 못할 때도 있사오나 경계를 넘어 역사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물리적, 지리적 한계를 넘어 선교의 역사 가운데 우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역병 속에서 선교사님들과 그 가족들, 섬기는 분들을 지켜주셔서 무사히 넘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주님, 이 자리에 나온 산성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새로운 아침을 열며 기도로 시작하는 이들의 심령을 주님의 말씀으로 채워주시고, 이들의 육신에 생기가 들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삶의 여러가지 간구와 기도의 제목들을 갖고 이 자리에 나아갑니다.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주님께 올려드릴 때 주님께서 판단하여 주시고, 주님의 천군 천사들을 동원하여 그 문제가 풀리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병상에 있어서, 여러가지 사정으로 나오지못한 성도들에게도 주님의 은혜가 임하게 하여 주시고, 그들이 작은 소리로 주님을 부를 때에도 우리 주님 크게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 시간 주님의 말씀앞에 반응하게 하시고, 결단하여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게 하옵소서. 우리가 말씀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 삶을 판단하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있는 선입견과 틀을 넘어서서 우리의 고집과 편견을 해체하시고,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새창조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시편 89편 봉독 5:40

도입
[시편의 배경]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은 다섯권의 시편중 제 3권을 마무리 하는 시편입니다. 시편150편은 다섯권으로 나눌 수 있고 각 권은 이스라엘이 경험했던 역사와 하나님과 관계를 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89편은 제 3권의 마지막으로 다윗 왕조의 끝을 다루고 있습니다. 89편뿐만이 아니라, 1권에서 3권까지 드러났던 다윗에 대한 주제가 마무리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뒤에도 다윗의 시가 나오나 전체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이는 인간 다윗의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다윗에게서 시작한 유다 왕조, 그리고 그들이 예배드렸던 성전과 그들의 신앙이 무너져 내리는 체험을 시편 89편은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편은 나라가 망한 상태에서 읽어야 그 뜻을 더욱 깊이 알 수 있습니다.

[시편의 자리]
그렇게 이 시편을 읽어나갈 자리를 정하게 되었을 때, 오늘 시편의 시작은 조금 다르게 와닿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 성실하심, 하나님의 언약, 대대에 왕위를 세우시겠다는 그 약속과 그분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만, 그대로 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저 막연히 밝은 노래로 들리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오늘 본문의 시의 표제에 보시면 에스라인 에단의 마스길이라고 나와 있는데, 에단은 아마도 성전의 찬양대에 속한 것으로 볼 때에 자신이 속한 성전이 무너져버리고, 사라지고 그리고 그들이 기대어 살던 삶의 모든 기반이 파괴되는 경험 속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1부 1절-37절]
시편 89편의 앞부분 즉 1절에서 37절까지는 이 시는 전통적인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시를 분류하면 매우 전통적인 제왕시로 다윗 왕조의 왕과 그 왕을 세우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매우 익숙한 노래입니다. 창조의 능력으로 모든 혼돈을 제압하고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셨고,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시편을 읽을 때, 파도 바다가 나오면 바로 이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으로 읽으시면 됩니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이 물과 물을 나누고, 경계를 정하셨다고 하셨는데 시편에서 바다나 파도는 늘 하나님의 창조를 거스르는 세력을 뜻합니다. 어찌 되었든, 그러한 큰 파도가 있더라도 그 속에 알지 못하는 괴물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는 것, 우리에게 이렇게 든든한 분이 함께 하신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날 것입니다. 큰 물을 제압하고 승리하신 하나님처럼 오늘 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도 그렇게 해결해 주시면 좋을 텐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2부 38절-45절]
그러므로 오늘 시편은 38절에서 갑작스럽게 전환됩니다. 45절까지 본문에서 그들의 현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앞서 노래했던 것과 달리, 주님께서 기름부음 받은 자를 물리쳐버리셨고, 그와 맺은 언약을 미워하셨고, 그는 죽어 관에 들어갔습니다. 요새는 무너졌고,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자신들의 삶의 모든 기반이 무너졌고, 그들의 믿음조차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눈에 보이는 성전이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었고, 보기만 해도 든든했습니다. 또한 임금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 믿음직한 왕이 있었습니다. 저렇게 다윗의 왕조가 이어지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로 보였습니다. 또한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은 무너졌고, 왕조는 끊어져버렸습니다. 그들은 땅을 빼앗겨 먼 곳을 유리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응원하던 팀이 져서, 또는 자기가 속한 정치 세력이 힘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무너졌고, 남지 않은 것입니다. 자기 인생의 평생을 설명해 왔던 것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아니 조롱거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내가 자랑하고, 내가 아끼던 다윗의 왕조가 그렇게 끊어져버렸고, 영광스러운 성전은 돌무더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약속의 땅이라고 우리 조상이 하나님께 받았던 땅에서 조차 쫓겨나서 등붙이고 누울 곳을 찾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38절에서 45절까지의 상황입니다.

[3부 46절-52절]
그리고 마지막 부분 46절부터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기 시작합니다. 46절부터 49절까지는 하나님께 묻고 따지며, 절규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절규에는 때에 대한 물음을 담습니다. 46절에 언제까지인지, 주의 노가 언제까지인지 물으며, 47절에는 자신의 때가 짧은 것을 아뢰며, 그 때가 길어져서 안된다는 것을 호소합니다. 48절은 그러다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49절은 이전의 인자하심이 어디 있는지 묻습니다.

그가 쓸 수 있는 모든 의문사로 하나님께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가 언제까지인지, 어찌 그리 허무한지, 누가 죽음을 보지 않으며, 어디에 주의 인자하심이 있는지를 물으며 간구합니다. 그 가운데 50절은 결론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가 받은 모든 비방은 결국 주의 기름부음 자에 대한 비방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기름부은 자를 허락하여 주시길, 이를 통해 회복시켜 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89편은 그 기도가 응답받았는지는 결론내지 않은채 시편 3권을 마무리 하며 끝내고 있습니다.

[적용 본문의 문제- 기름부음받은 자의 부재]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기름부음자의 부재에 대한 문제입니다. 단순히 하나의 왕조, 정치체제가 무너진 것, 내가 속했던 어느 국가가 무너지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자가 그렇게 관속에 들어가 던져졌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에게 더 이상 왕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리키고 있습니까? 지금부터 2500년 전에 어느 왕조가 사라졌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에게는 달랐습니다. 그들에게 다윗 왕조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어진 것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엔 다윗 왕조든, 그 다음 왕조든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면 되는데 이들에게는 이것이 전부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세속의 왕과 정체가 그들에게는 마치 신앙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통치자들 가운데, 마치 자신이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자인양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아들인척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신앙인으로 자신을 포장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하나님의 뜻인양 포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얼마나 하나님과 관계있겠습니까? 여기에 넘어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상 수많은 통치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자신이 누리는 이 권력이 하나님께로 부터 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 끝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론은 39절이 될 뿐입니다. 스스로 신이라 또는 신의 아들이라 참칭하던 자들의 관을 땅에 던져 그들을 욕되게 하셨을 뿐입니다. 죽음 후에도 존경을 받고자 방부제 처리를 한들, 시간이 지나 정권이 바뀌면 태워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너무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현실에서는 끊임없이 어떤 정치집단을 절대적인 의로, 하나님께 속한 자들로 여기며, 그들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뜻이 드러날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그들이 세력을 얻으면 하나님의 역사인것 같고, 그들이 약해지면 사단의 대적처럼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권세자들은 그중에서 우열을 매길 수는 있겠지만, 결국 지나가는 자들일 뿐입니다. 설사 다윗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물론 그의 믿음의 삶은 후대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틀이 되었다 할지라도, 세속의 왕조로서 다윗의 계보는 그저 지나가는 바람과 같을 뿐입니다. 이스라엘은 다윗이라는 왕과 그 왕조를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보았지만, 세속의 정치와 그들의 신앙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끈이 끊어 지게 되었을 때, 다윗 왕조가 무너지게 되었을 때 그들은 자신의 신앙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고 하나님이 사라지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잡히셨을때, 이는 분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이들은 예수님을 다윗과 같은 메시아로, 세속의 왕으로 삼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아무 저항없이 잡히셨습니다. 그리고 세속의 권력을 상징하는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요한복음18:33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여기에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요18:36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의 나라로, 치환하려는 실수를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그 집단이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고 한들, 또는 남들이 그들을 가리켜 그렇다고 해도 결국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가 아니기에, 그들은 결국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들입니다. 정치를 하면서 스스로 공공연히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운다고 해도,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자들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주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닌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의 은혜]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면, 오늘 본문에서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끝을 맺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갑작스럽게 구원하셨다는 내용도 없고, 잘 풀리게 되었다는 내용도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우리는 그 이후를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가려진 눈을 뜨게 하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더욱 분명한 계시를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치적인 다윗왕조를 통한 하나님 나라를 꿈꾸었다면, 시편 89편 이후에는 통해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계시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러한 기대 속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실 메시아, 더 이상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왕이 아니라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할 왕, 바로 48절에 나타나는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자기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지실 메시아,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고대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절망속에서 외친 절규속에 그리스도를 향한 예언이 담겨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또한 이 시대가운데, 절망하고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끝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조가 아니어도 그 백성과 함께 하시며 구원자를 허락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이 아니어도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구원의 역사를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주님을 경축하며, 이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고대하며 주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설교후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이 땅에서 주님의 구원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생각과 다른 역사의 흐름 속에 괴로워할 때도 있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있는지 절규하게 될 때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때로는 섣불리 판단하여 내 뜻이 마치 주님의 뜻인양 주장하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보는 역사의 흐름은 겨우 단편에 불과하오니,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주님께서 주관하여 주옵소서.

때로는 의로운 자들이 실패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악한 자들이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할지라도 주님을 신뢰하게 하시고 크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생각보다 크신 구원의 능력으로 덮어주셔서 우리가 괴로워하는 인생의 문제가 있더라도, 거기에서 끝나지 않게 하시고 그 다음의 계시로 넘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둘러싼 문제들 속에 매몰되지 않게 하시고, 우리와 함께 계실뿐만 아니라 우리 위에 계신 주님의 뜻을 기대하게 하옵소서. 부활의 능력을 기대하며, 사망 권세 이기신 주님을 권능을 힘입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기도1
오늘 이 아침에 주님 앞에 기도하실때에 각자 가져온 기도의 제목들도 기도하시겠지만 먼저 말씀을 생각하시면서, 우리의 기대가 무너질 때에도 더욱 크신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을 보게 해달라고 기다하기 원합니다. 다윗이란 왕조는 무너졌어도, 세상의 임금은 사라지게 되었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죽음을 이기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된 것처럼 우리의 상황이 우리의 기대와 다르다 할지라도 더욱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은혜를 구하는 자리로 나가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2
그리고 코로나 19상황을 놓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계적인 재난 속에서 미국과 유럽의 여러나라들, 그리고 우리 선교사님들이 계신 나라들에도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선교지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어려움 속에 있는데, 이 역병이 그치게 하시고, 수고하는 모든 당국자들과 방역책임자들, 의료진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놓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3
또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실 때, 새롭게 새워진 300명의 일꾼들에게 청지기로서 직분 잘 감당하도록 기도해 주시고, 주님을 경외하며 정의와 공의로 일을 감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북녘에 있는 동포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그들에게 자유와 해방의 날을 허락하사 주님의 이름을 마음껏 부를 수 있는 날이 오게 하시고, 그들의 고통의 날들을 감하여 주실 것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각자 가져오신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신 후에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