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0 새벽(사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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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0. 새벽예배 (사23) 사23:1-18
찬양 4분

기도 (5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아침에 주님 손에 이끌리어 나왔습니다. 우리의 걸음이 이곳에 닿기 까지 우리 주님의 도우심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이 시간 주님의 긍휼에 의지하여 나아가오니 우리로 주님의 사랑을 덧입게 하시고, 겸손한 마음으로 은혜를 구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먼저 고백하기는 주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은혜에 무감각하게 살아왔습니다. 우리의 영은 잠들어 있고, 우리의 감각은 닫혀 있어서 주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았고, 주님의 역사를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때를 분별하며 주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그저 일상의 욕구를 채우는데 우리의 시간을 허비하였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 주님을 기억한 것만으로 스스로 정한 경건의 분량을 채웠다며 교만해 왔습니다. 주님 이러한 우리의 교만함과 나태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뜻에 반응하지 못한채 죽은자와 다를바없는 우리의 굳어버린 심령 가운데 주님 다시 한 번 부르럽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고통받는 자들을 위해 간구합니다. 주님 많은 비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자들과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이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물이 빠지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이 있습니다. 또한 수해로 수많은 가축들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주님, 이 비가 멈추게 하시고, 더 이상 가슴아픈 일들이 벌어지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지구가 병들어 감에도 무관심하며, 편리함에 취해있던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시고, 저희로 인하여 고통받는 모든 피조물을 긍휼히 여겨 주셔서 이러한 재난이 그치게 하여 주옵소서.

코로나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감염되어 병상에 있는 자들에게 적절한 치료가 제공되며 회복의 날이 속히 오게 하시고, 방역을 위해 애쓰는 모든 의료진과 당국자들이 피곤하고 지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집단발병이 멈추게 하여 주셔서 안심하고 지낼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께서 세우신 이 제단을 돌아보시사, 주님의 평강이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예배마다 철저한 준비로 안전하게 예배를 드리게 하시고, 우리의 부주의로 연약한 형제 자매들이 감염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원로 목사님의 신원을 강건케 하시고 주 안에 거하게 하여 주옵소서. 담임목사님을 주님께서 기억하여 주시고 지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시고 말씀의 권능으로 세우고 살리는 일들을 잘 감당하게 하여 주옵소서. 당회원들을 기억하사 성도들의 본이 되며 사랑과 믿음으로 권면하며 존경받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부교역자들은 맡겨진 영혼들을 말씀으로 돌보게 하여 주옵소서.

교육부서를 기억하여 주셔서, 여름 사역들이 안전하게 진행되게 하시고, 교사와 아이들 모두 은혜를 경험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제한된 상황 속에서도 가르치기 위해 애쓰는 교사들의 수고를 기억하여 주시고, 사랑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아이들이 믿음으로 자라게 하옵소서.

또한 주님, 이 자리에 나온 산성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새로운 아침을 열며 기도로 시작하는 이들의 심령을 주님의 말씀으로 채워주시고, 이들의 육신에 생기가 들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삶의 여러 간구와 기도의 제목들을 갖고 이 자리에 나아갑니다. 말씀에 반응하게 하시고, 결단하여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게 하옵소서. 우리가 말씀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 삶을 판단하게 하옵소서.

또한 병상에 있어서, 여러 사정으로 나오지 못한 성도들에게도 주님의 은혜가 임하게 하여 주시고, 그들이 작은 소리로 주님을 부를 때에도 우리 주님 크게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옵소서. 심상길 장로님을 기억하여 주셔서 늘 나오시던 이 자리에서 함께 예배드릴 날이 오게 하시고, 아픔 가운데 있는 모든 성도들의 간구를 주님 들으사 속히 치유와 회복의 날이 오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이사야23장 말씀입니다. 말씀을 한절씩 교독하고 마지막 절은 같이 읽겠습니다. (교독)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두로에 대한 심판과 회복의 말씀입니다.

첫번째로 본문을 살펴볼 때, 왜 열방에 대한 말씀을 주셨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본문의 큰 맥락을 살펴보면, 열방에 대한 예언의 일부로 유다의 주변국에 대한 하나님의 다스림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열방에 대한 예언으로 부르는데, 이사야서뿐만이 아니라 예언서에 보면 남유다나 북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외에도 이방 민족에 대한 예언을 포함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예언은 왜 성경에 있는 것을까요? 어차피 이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인데, 이방민족에 대한 내용을 왜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우리가 예언을 그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목록으로 이해하면, 이 부분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언의 목적이 하나님의 경륜- 다시 말해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드러내기 위함으로 이해할때, 본문의 의미는 분명하게 됩니다. 말씀하시는 분이 유다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드러냅니다.

다시 말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게 주는 예언과 달리 열방의 예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초점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당대의 사람들이 신들은 그저 지역을 관장하는 것으로 이해할때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계를 다스리시는 분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해는 말씀을 듣는 자로 하여금,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내편이니, 무조건적으로 다 잘될거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벗어나서 세계사를 주관하시는 크신 하나님, 보편적인 역사 속에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방 민족도 징계하시지만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때, 겸손해 지게 됩니다. 우리 민족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으면 망하는 구나,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지만, 이방민족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구나를 이해해야, 비로소 열방을 위한 제사장 민족, 제사장 나라라는 이스라엘의 부르심을 이해하게 됩니다.

출애굽이 왜 있었습니까? 하나님은 단지 아브라함 혈통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19장 6절에 보면, 제사장 나라로 삼기 위함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이스라엘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통해 열방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열방의 예언은 끊임없이 이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 겸손케 합니다.

두번째로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두로라는 도시입니다. 본문은 1-14절까지는 두로의 심판을, 15-18은 두로의 회복을 다루고 있습니다. 두로라는 도시는 이스라엘의 주변에 있는 해양세력의 거점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잘 지낼 때도 있지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때도 있었습니다. 두로는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의 고향이었습니다.

이들은 페니키아 인이고, 지중해를 무대로 무역을 하던 자들이었습니다. 해상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일구었고, 다루지 않는 품목이 없었습니다. 상업도 발달했지만 알파벳도 이들이 만들어 냈었고, 지중해 곳곳에 도시를 개척했는데, 로마와 일전을 벌였던 카르타고도 이들의 도시였습니다.

두로가 강력했던 이유는 이러한 상업적 성공도 있었지만, 군사적으로 정복하기 어려웠던 점도 있었습니다. 두로는 해안에서 7-800미터 떨어진 곳에 성채가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두로에 적들이 쳐들어 오면, 성채로 피신하면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배를 타고 쳐들어가기도 지형상 불리해서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들은 교만하였습니다. 이들의 부에 대해서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무역을 통해 모든 물품을 사고 팔지만, 이를 위해 무엇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어찌보면 실용적이지만 타락한 자들이며, 교만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어디까지 무역을 하던지 1절에 보면 다시스의 배들이 나오는데, 스페인을 가리킵니다. 지중해의 동과 서를 오가며 그들의 세력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랑하던 성은 파괴되었고, 회복하기 까지는 70년, 문자적인 숫자라기보다는 완전한 때가 이를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는 예언이 주어졌습니다.

이러한 두로에 대한 묘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 사탄의 모습으로도 이어집니다. 요한 계시록 18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던 바벨론이 멸망하게 되고, 그들과 거래하던 상인들이 바다에서 비탄에 빠진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요한계시록의 바벨론과 구약의 두로과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28:2에 보면,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거늘

나중에 이 말씀은 사탄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을 하게 됩니다. 이들의 교만과 허영은 사탄에 대한 묘사로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두로라는 도시 자체가 사탄이라는 뜻은 아니겠지만, 이스라엘은 이들의 교만함과 타락에서, 이익을 위해서는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고, 어떤 것도 사고팔 수 있는 이들의 모습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의 형상을 보았던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무엇을 전하고 있습니까? 이처럼 대단한 두로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대적하며 교만한 자들이라 할지라도, 결국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높이며 잘난체 하며, 상업적 성공과 군사적 승리에 취해 있는 두로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습니다. 이들도 결국 다른 열방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심판을 받게 됩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와서 두로는 함락되었습니다. 알렉산더는 7-800미터나 되는 거리를 돌과 흙을 부어 섬을 육지로 만들었고, 견고하던 성은 결국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지도를 보면 섬이 아니라 육지가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심판은 성취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아침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시대에 자신의 부를 자랑하고,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자부하는 자들은 돈에 취해 스스로를 신으로 여기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내버려 두지 아니하십니다. 어떤 것도, 그 무엇도 안전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두로에 쌓인 보물들이 그들을 안전하게 지킨다고 생각했겠지만, 그 재물 때문에 군대가 쳐들어온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날에도 자신의 성을 쌓으며, 그 속에서 부를 축적하며 교만한 자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선고 하십니다. 교만하여 스스로 신으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그들도 인간일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오직 주님뿐입니다.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주식이나, 적금이나, 부동산이 아니고, 성공한 자녀들도 아닙니다. 사회적 지위와 인맥도 아닙니다. 다만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께서 여러분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를 때 주님께서 들으실 것입니다. 겸손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이십니다. 이 아침에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로 교만케 하는 것들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시길 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열방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그 다스림 아래 오늘 하루 순복하기 원합니다. 스스로 재물을 쌓아두며, 성벽을 굳게 한들 주께서 허락치 않으시면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런데 두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을 의지하며 나아가게 하옵소서.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를 때에, 주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기도1
오늘 이 아침에 주님 앞에 기도하실때에 각자 가져온 기도의 제목들도 기도하시겠지만 먼저 말씀을 생각하시면서, 기도하기 원합니다.

우리로 교만케 하는 것들에 취하지 않게 하시며, 주님만 의지하는 자들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기도2
또한 수해로, 코로나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합시다. 주님 이 어려운 시기가 지나가게 하시고, 회복의 날이 오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각자 가져오신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신 후에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