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3 새벽( 창44:18-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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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중보 200913 새벽기도

찬송 312
주님,
이 새벽, 이른 시간 피곤한 몸을 일으켜 기도의 자리에 나아갑니다. 걱정과 한숨속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 시간을 맞이하는 이들, 눈뜨기조차 겁이나지만, 그럼에도 기도하고자 나온 이들, 아니 기도조차 할 수 없지만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들이 이 시간 주님 앞에 함께 나아갑니다. 비록 홀로 각자의 처소에서 나아가지만, 우리 주님 안에 연결된 온 산성의 성도들이 이시간 함께 나아가고 있는 줄 압니다. 주님, 이 예배가운데 함께 하여 주옵소서.

주님,
주님께서 어디에나 계시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작 예배의 처소에 모이지 못하여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은 이곳에도 계심을 믿지만, 그럼에도 점점 흩틀어 지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볼 때, 우리의 믿음은 과연 확고한 것인가 회의에 들때가 있습니다. 함께 모여 예배 드릴 때 느끼던 기쁨과 즐거움이 작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그 소소한 시간들이 우리에게 큰 선물이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주님, 우리에게 속히 회복의 날, 은혜의 날이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반가운 얼굴들, 그리운 얼굴들을 마주볼 날이 오게 하여 주옵소서. 반가운 마음에 두손잡고, 얼싸안고 인사할 날이 오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어린 자녀들이 교회 곳곳에서 놀며 재잘거리는 날이 오게 하시고, 함께 찬양할 때의 감동이 회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소박한 반찬이나마 함께 식사하며 교제하던 그날의 순간들을 다시금 오게 하여 주옵소서. 새로운 표준과 새로운 시대가 되었다고 하나, 주님 이전에 주셨던 소중한 선물들을 포기하기에 연약한 저희들이오니 주님 이전의 은혜를 회복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이웃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비어있는 거리와 닫혀 있는 가게들을 보면서 이웃의 한숨을 헤아리게 하여 주옵소서. 이 어려운 시기를 겪는 이들을 주님께서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
주께서 공동체를 위해 세우신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지금도 애쓰고 수고하는 방역당국과 의료진을 기억하여 주셔서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포기하지 않도록 새힘을 더하여 주시고, 저희들도 같은 마음으로 동참하여 대한민국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이 어려움을 이겨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을 주님께서 함께 하여 주셔서, 이 어려운 시기에 가장 절실한 일들을 감당해 나가며 주님의 뜻을 감당하게 하여 주옵소서.

주께서 세우신 산성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기도의 성벽을 재건하는 기도의 자리에 저희를 세워주시기 감사합니다. 각가정마다 어린 자녀들이 고사리같은 두손 모아 기도하게 하시고, 노년의 성도들도 더욱 기도에 힘써 영적인 부요함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온 성도들이 함께 영적인 성벽을 쌓아 이 어려운 시기에도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께서 원로목사님을 기억하셔서, 늘 주님 뜻 안에 거하게 하시고 강건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주님께서 담임목사님을 세워 주셨사오니 이 어려운 시기에 분별하는 마음을 주셔서 여러가지 일들을 지혜롭게 헤아리게 하시고, 강건하여 그 몸이 상하지 않게 지켜 주옵소서. 또한 당회원들을 기억하여 주셔서, 주님의 뜻을 깨달아 감당하게 하시고 늘 기도에 힘쓰며 주님께 인정받고 성도들에게 존경받게 하여 주옵소서. 부서 사역자들을 기억하여 주셔서 아이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제한된 상황 속에서도 전달되게 하시고, 지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여러 부서의 사역들이 진행되기 어려운 가운데 있으나, 해야할 일들을 마땅히 감당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열방 가운데, 온 세계가 코로나로 괴로움 가운데 있습니다. 주님께서 긍휼히 여겨 주시고 회복의 날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현지에서 생활하는 선교사님과 성도들을 기억하사 은혜의 날이 오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연약한 성도들을 기억하여 주셔서, 그들의 짐을 주님께서 대신 져 주시고, 새힘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수술을 앞두고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평안을 주시고 좋은 결과를 허락하사 기쁨으로 주님께 영광돌리게 하옵소서. 또한 회복중인 이들에게도 은혜를 허락하셔서 재활이 잘 이루어져 이전보다 더욱 강건케 되어 함께 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주님, 이 자리에 나온 산성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새로운 아침을 열며 기도로 시작하는 이들의 심령을 주님의 말씀으로 채워주시고, 이들의 육신에 생기가 들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삶의 여러 간구와 기도의 제목들을 갖고 이 자리에 나아갑니다. 말씀에 반응하게 하시고, 결단하여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게 하옵소서. 기도의 자리가 더욱더 풍성해 지게 하여 주옵시고, 이들이 쌓는 기도의 성벽 굳게 세워져 우리 주님께 영광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뜻을 분별하게 하시고, 각자의 삶가운데 기도의 응답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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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창세기 44:18-34 입니다. 창세기 44:18-34절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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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44:18-34
18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당신의 종에게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아뢰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19 이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버지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20 우리가 내 주께 아뢰되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 청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가 남긴 것은 그뿐이므로 그의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21 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내가 그를 보게 하라 하시기로
22 우리가 내 주께 말씀드리기를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23 주께서 또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 막내 아우가 너희와 함께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기로
24 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아뢰었나이다
25 그 후에 우리 아버지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 하시기로
26 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막내 아우가 함께 가면 내려가려니와 막내 아우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
27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28 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29 너희가 이 아이도 내게서 데려 가려하니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30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31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32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33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34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아멘….

오늘 본문에는 유다의 중보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어쩌면 요셉 이야기 속에 단편처럼 지나가는 말씀이지만, 요셉이야기의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과연 형제들과 화해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결정되는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요셉의 인생뿐만 아니라 야곱의 자손들, 그의 모든 형제자매들의 운명이 걸렸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이어질 약속의 자손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이 순간에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들을 다루시는지, 하나님의 손에 이끌린 자를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의 중심인물은 유다입니다. 그는 여러 면에서 요셉과 비교되는 인물입니다. 후대에 이스라엘이 남쪽은 유다지파로, 북쪽은 요셉지파를 중심으로 나뉘어 지게 되는데, 지파 내에서도 이들이 지도자적인 역할을 감당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비는 솔로몬 이후, 왕국이 분열되면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미 야곱의 아들들의 이야기 속에 이미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후반부에는 야곱의 아들 요셉과 유다가 대비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창세기 37장부터 50장까지 우리가 흔히 요셉의 이야기로 분류를 하지만, 그 큰 흐름 속에는 요셉과 유다의 비교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셉은 상인들에게 팔려가 애굽에 가게 되었습니다. 형제들을 떠나게 되었지만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피하고, 신실함을 지켜냈으며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어떻습니까? 요셉이 팔린 이후에 38장에 보면, 유다 또한 형제들을 떠났고, 그곳에서 며느리 다말에게 속아 아들을 낳았습니다. 몰랐다고 하더라도, 며느리도 몰라본 그의 명예는 더이상 남아 있을 것도 없었습니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44장은 야곱의 두 아들, 유다와 요셉의 만남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창세기 후반부에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이 일이 요셉이 꾸며낸 일이라 해서 잘 풀린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요셉으로서는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고 팔아먹은 형제들이 과연 바뀌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전히 시험 앞에 분열되고 서로 배신하고 속인다면, 그는 형제들과 화해의 가능성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저 관계의 회복은 물 건너가는 것이고, 요셉조차 그의 아버지를 반겨맞이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실은 요셉조차 형제들의 반응에 따라 그의 운명이 갈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방땅에서 겨우 살아남았고, 이제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이제 지난 날의 갈등을 풀 기회가 왔는데, 이 순간을 놓치게 된다면, 그는 아마도 계속해서 애굽사람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이전에는 요셉이 시험을 받았다면,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서 시험을 받았다면, 이제 형제들이 시험을 받고 있습니다. 이 시험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이 문제를 풀 수 있겠습니까? 누가 나설 수 있겠습니까?

장남 르우벤은 서모와 간통하여 이미 집안에서 영향력이 없는 상황입니다.
형제들 중에 유다가 있지만, 그도 얼굴을 들고 다닐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며느리에게서 아들을 낳은 정신없는 사람이 무슨 지도력을 펼친다고 나서겠습니까? 그러나 이처럼 이처럼 자격없는 유다였지만, 위기의 상황 속에 책임을 지고 중보하며 책임지려 합니다. 차라리 나를 종으로 삼으라고 요셉 앞에 나오게 됩니다.

유다입장에서는 베냐민은 죽은 목숨 치고 얼른 그 상황을 모면하는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베냐민이 이미 도둑으로 몰린 상황에서 공범으로 몰릴 수 있습니다. 괜히 애굽 총리의 화를 돋구어 함께한 모든 형제들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얼른 도망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유다는 더이상, 형제를 잃을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아버지 야곱 앞에서 동생이 죽었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베냐민을 대신하여, 스스로 종이 되겠다고 나섭니다.

이러한 결단은, 이러한 중보는 유다로 형제들 중에 우두머리로 세워지기 충분하였습니다. 비록 이전에는 시험에 넘어지고, 실패했을지라도 이러한 결단과 헌신을 주님께서 귀하게 보셨습니다. 이전에는 어영부영하다 동생 요셉을 잃어버렸을지 모르지만, 공동체를 떠나 있다 며느리를 범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몸소 종이 되기로 나섬으로, 베냐민을 위해 중보하며 나아갑니다.

이 일의 결과로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요셉의 시험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기근 중에 목숨을 보존케 되었으며, 잃어버린 형제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요셉 또한 이제서야 그의 형제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고, 노년의 아버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유다의 중보로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유다의 모습을 귀하게 여겨주셔서, 그로 이스라엘의 우두머리 지파가 되게 하시고, 메시아로 오실 예수님, 우리의 중보자가 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그릴 수 있게 하여 주셨습니다. 유다의 중보를 통해 온 가족이 살아나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예수님의 중보로 온 인류가 살아나는 그 소식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실패했던 유다, 시험에 넘어졌던 유다였지만 그러나 중보자로 서게 되었을 때 주님께서는 그를 다시 일으키시고, 그를 다시 세우시고, 그의 형제들의 중에 머리가 되게 하셨고 그를 통해 메시아를 예비케 하여 주셨습니다. 한번 시험으로 끝난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 번 실패로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아침에,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중보자의 자리에 서고자 하는 자들을 주님은 회복시키시고, 새 일을 행하십니다. 어쩌면 더이상 가망이 없다고, 도망치는게 맞다고,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체념하는게 상식일지 모르지만 중보자로 기꺼이 서게 될 때 주님께서는 그를 통해 새로운 일을 일으켜 나가십니다.

우리의 자리는 어디이든지, 각자가 처한 상황 속에 위기가 온다면 어쩌면 이는 주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의 자리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공동체가 회복될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이러한 중보자를 찾으십니다. 지난 주 말씀에 주님 앞에 서서 민족을 중보했던 모세를 통해 역사하셨듯이, 주님은 이러한 자를 찾으십니다.

에스겔서 22:30 말씀입니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주님께서는 백성에 죄악에 진노하셨지만, 종보자가 없음에 탄식하셨습니다. 단 한 사람의 중보자를 찾고 계십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중보자를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중보자를 통해 구원을 베풀기 원하십니다. 우리의 중보자 예수님을 통해, 베푸신 그 사랑을 오늘 나를 통해서도 내가 속한 그 자리에도 부어주시길 원하십니다. 오늘 하루 가운데, 중보자로 서서 주님께 간구하며 주님의 구원의 물길을 이끌어 황폐해진 땅을 적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자리에, 중보자로 서기 원하는 주님의 권속들이 있습니다. 이전에 실패하였고, 자격이 없다고 하지만, 이번에는 중보자로 그 사명을 감당코자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들을 사용하여 주시고 이들을 통해 주님의 구원이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날 한국교회가운데, 이 민족 가운데 중보자들이 세워지게 하여 주옵소서. 산성의 그늘에서 자란 우리의 다음세대가 이러한 중보의 사명을 감당케 하여 주옵시고, 우리 또한 오늘 감당해야할 중보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기도1
오늘 이 아침에 주님 앞에 기도하실때에 먼저 유다와 같은 중보자로 서기를 구합시다. 주님 앞에 서서 기도하며, 교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각자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중보의 사역을 충분히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각자 품고 계신 기도의 제목을 주님 앞에 올려드린 후 세상을 향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