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8 새벽( 창47:1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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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47:13-26
찬송 292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아침에 피곤한 몸을 일으켜 기도의 자리에 나아갑니다. 비록 홀로 각자의 처소에서 나아가지만, 우리 주님 안에 연결된 온 산성의 성도들이 이시간 함께 나아가고 있는 줄 압니다. 주님, 이 예배가운데 함께 하여 주옵소서. 기도할 수 없는 이들의 입술을 열어주시고 그 영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속히 회복의 날, 은혜의 날이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반가운 얼굴들, 그리운 얼굴들을 마주볼 날이 오게 하여 주옵소서. 반가운 마음에 두손잡고, 얼싸안고 인사할 날이 오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어린 자녀들로 교회가 채워지게 하시고, 함께 찬양할 때의 감동이 회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함께 기뻐하며 식사하던 지난날의 은혜가 다시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주께서 공동체를 위해 세우신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지금도 애쓰고 수고하는 방역당국과 의료진을 기억하여 주셔서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포기하지 않도록 새힘을 더하여 주시고, 저희들도 같은 마음으로 동참하여 대한민국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이 어려움을 이겨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을 주님께서 함께 하여 주셔서, 이 어려운 시기에 가장 절실한 일들을 감당해 나가며 주님의 뜻을 감당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사 경제적으로 어려움 당하는 이들과 병상에 있는 이들, 단절로 인해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 기간이 더 길어지지 않게 하시고, 속히 회복의 날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께서 세우신 산성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기도의 성벽을 재건하는 기도의 자리에 저희를 세워주시기 감사합니다. 온 성도들이 함께 영적인 성벽을 쌓아 이 어려운 시기에도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께서 원로목사님을 기억하셔서, 늘 주님 뜻 안에 거하게 하시고 강건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주님께서 담임목사님을 세워 주셨사오니 이 어려운 시기에 분별하는 마음을 주셔서 여러가지 일들을 지혜롭게 헤아리게 하시고, 강건하여 그 몸이 상하지 않게 지켜 주옵소서. 또한 당회원들을 기억하여 주셔서, 주님의 뜻을 깨달아 감당하게 하시고 늘 기도에 힘쓰며 주님께 인정받고 성도들에게 존경받게 하여 주옵소서. 부서 사역자들을 기억하여 주셔서 아이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제한된 상황 속에서도 전달되게 하시고, 지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여러 부서의 사역들이 진행되기 어려운 가운데 있으나, 해야할 일들을 마땅히 감당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열방 가운데, 온 세계가 코로나로 괴로움 가운데 있습니다. 주님께서 긍휼히 여겨 주시고 회복의 날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현지에서 생활하는 선교사님과 성도들을 기억하사 은혜의 날이 오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연약한 성도들을 기억하여 주셔서, 그들의 짐을 주님께서 대신 져 주시고, 새힘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수술을 앞두고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평안을 주시고, 좋은 결과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암으로, 허리 수술로 여러가지 질병으로 병상에 있는 성도들을 주님께서 기억하여 주옵소서. 회복중인 이들에게 은혜를 허락하셔서 재활이 잘 이루어져 이전보다 더욱 강건케 되어 함께 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입시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수험생들 끝까지 지치지 않게 하시고 그들이 준비한 모든 것이 헛되지 않게 하시고, 그들의 10대가 그저 점수와 대학으로 판단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결혼을 위해 기도하는 이들에게 만남을 허락하여 주시고, 일자리를 구하는 자들에게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일자리가 주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멀러 있는 자녀들 유학으로 주재원으로 나가있는 이들을 지켜주시고, 군복무중인 아들들에게 함께 하여 주셔서 그들의 인생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고백하게 하옵소서.

또한 주님, 이 자리에 나온 산성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새로운 아침을 열며 기도로 시작하는 이들의 심령을 주님의 말씀으로 채워주시고, 이들의 육신에 생기가 들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삶의 여러 간구와 기도의 제목들을 갖고 이 자리에 나아갑니다. 말씀에 반응하게 하시고, 결단하여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게 하옵소서. 기도의 자리가 더욱더 풍성해 지게 하여 주옵시고, 이들이 쌓는 기도의 성벽 굳게 세워져 우리 주님께 영광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뜻을 분별하게 하시고, 각자의 삶가운데 기도의 응답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47장 13절에 26절까지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47장 13절에서 26절까지 말씀입니다. 말씀을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창세기47:13-26
13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
14 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가니
15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돈이 떨어진지라 애굽 백성이 다 요셉에게 와서 이르되 돈이 떨어졌사오니 우리에게 먹을 거리를 주소서 어찌 주 앞에서 죽으리이까
16 요셉이 이르되 너희의 가축을 내라 돈이 떨어졌은즉 내가 너희의 가축과 바꾸어 주리라
17 그들이 그들의 가축을 요셉에게 끌어오는지라 요셉이 그 말과 양 떼와 소 떼와 나귀를 받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되 곧 그 모든 가축과 바꾸어서 그 해 동안에 먹을 것을 그들에게 주니라
18 그 해가 다 가고 새 해가 되매 무리가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가축 떼가 주께로 돌아갔사오니 주께 낼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토지뿐이라
19 우리가 어찌 우리의 토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며 토지도 황폐하게 되지 아니하리이다
20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의 모든 토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바치니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기근에 시달려 각기 토지를 팔았음이라 땅이 바로의 소유가 되니라
21 요셉이 애굽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으나
22 제사장들의 토지는 사지 아니하였으니 제사장들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음이라 바로가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들이 토지를 팔지 않음이었더라
23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토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24 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가져서 토지의 종자로도 삼고 너희의 양식으로도 삼고 너희 가족과 어린 아이의 양식으로도 삼으라
25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26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의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오늘 본문의 말씀에 애굽을 살리는 요셉의 정책이란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성경책에 따라 다른 제목을 붙인 경우도 있겠지만, 크게 차이 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기근의 시대에 애굽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애굽처럼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을 주께서 붙잡아 주시길 소망합니다.

도입
속담 중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뜻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나락에 볍씨를 틔우고, 모내기하는 그 과정에 들어가는 정성을 보고 자랐습니다. 때로는 볍씨가 최적으로 자랄 수 있는 온도에 맞추기 위해, 안방을 씨나락에 내어줄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작은 촉이 나오고, 모판에 뿌려 못자리에서 자라게 하고, 다시 모판을 못자리에서 꺼내 모내기를 하기까지 그 수고를 감당해야만 비로소 그해 농사가 시작이 됩니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다는 소리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허황된 말이란 뜻으로 사용을 합니다. 여기서 씨나락은 절대 손을 댈 수 없는 것입니다. 농부에게 씨가 없다는 것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내기가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린 모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건조한 바람에 말라죽기도 하고, 때로는 이런 저런 병이 돌아 죽기도 합니다. 그러면 씨를 심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미래가 없습니다. 제아무리 기근이 심하더라도, 그해 추수한 것이 적어서 굶어야 하더라도, 씨나락만은 지켜야만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말은 무슨 말이겠습니까? 허황된 말이란 뜻도 있지만, 일어나서는 안될 일,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란 뜻도 이면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실은 진짜 귀신보다 무서운 일은 씨나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더이상 종자, 씨나락조차도 다 써버려서 아무런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래서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로 가볍게 읽을 본문이 아닙니다. 종자조차 없어서 요셉에게 구하고 있는 농부들의 절박함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그저 눈으로 훑고 지나가는 본문이 됩니다. 그러나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읽어나가면, 오늘 본문은 오늘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말씀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오늘 본문 13절에는 기근이 더욱심하여 졌고 그 영향이 온 애굽과 가나땅에 미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근이 있더라도, 농사를 안 지을 수 없습니다. 요셉의 해몽을 통해 7년간의 풍년과 7년 기근이 온다는 예측이 있었지만, 모두가 알고 있던 것은 아닙니다. 바로를 비롯해 애굽의 핵심 지도층은 알고 있었겠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이 알았을까? 생각해보면 알더라도 대비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른채 기근을 맞이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애굽 백성들이 다 요셉에게 나왔습니다. 요셉은 백성들에게 돈을 받고 곡식을 주었고, 돈이 떨어지자 가축과 바꾸어 주었고, 바칠 가축이 떨어지자 몸과 땅을 요셉에게 갖고 나와 바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든 토지가 다 바로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기근은 계속되고 있었고, 견뎌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요셉은 어떻게 합니까? 애굽 곳곳에 백성들을 재배치를 하게 됩니다. 목숨을 건지기 위해, 절박했던 사람들은 요셉의 제안과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살기 위해 새로운 표준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더이상 이전처럼 살 수 없었습니다. 그저 살아왔던 대로 농사를 짓는다고 해서 열매를 거둘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종자만 허비하고, 가족들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위기 속에서 견디기 위해서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감내해야만 합니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왜 돈을 받고 곡식을 주었을까요? 왜 백성들이 성읍을 옮기게 하였을까요? 이러한 요셉의 정책이 백성들에게 불리한 것이었다면, 백성들의 불만이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25절에 백성들은 은혜를 입었고, 기꺼이 종이 되겠다고 고백을 합니다. 백성들에게 나쁜 것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비록 바로의 종이 된다고 하나, 추수의 1/5만 바치면 되었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1/5을 내는 것은 매우 적게 내는 편이었습니다. 일제시대에도 독립운동을 못할 때에도, 소작쟁의가 있었습니다. 농사 짓고 얼마를 내느냐 이거만큼 민감한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땅주인에 따라 제각각 받았을 것이고, 더 많이 받는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역 유지들의 입김에 따라 여러 일에 동원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 땅이 있다하더라도, 갑자기 큰 돈이 들어갈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됩니까? 빚을 지게 되고 그러다보면 남의 땅을 지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점에서 바로의 종이 된다는 것은 다른 지주의 종에서 벗어난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가까이 있는 지주에 비하면, 멀리있는 바로가 이러저런 사역에 동원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거기에 소작료도 1/5이니 목숨을 구할뿐만 아니라 백성의 입장에서는 은혜를 입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의 입장은 어떻겠습니까? 기근이 7년이 간다는 것을 알지만, 7년을 버티는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기존 애굽 사회로는 이 기근을 견딜 수 없었기에, 토지 관계를 정리하고, 또 백성들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해야 기근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단지 요셉을 부리는 바로를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총리로 세우신 하나님, 온 세상을 기근에서 구하기 위해 자기를 이 자리에 부르신 분을 생각한다면, 요셉의 개혁은 단지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라, 그의 소명 그의 신앙으로 말미암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적용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도 어쩌면 요셉의 시대와 비슷합니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온 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여러가지 지표는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잘 막는 편이지만, 수출로 살아가는 이상 전 세계의 경기변동에 많은 부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코로나로 인해 우리의 생활도, 문화도 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익숙한 삶의 방식은 추억으로 남을지도 모릅니다. 작년의 계획이 내년에는 전혀 쓸모없는 것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약속의 자손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애굽 백성들을 살리시며 요셉을 통해 그들에게 살길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새로운 삶의 방식이 익숙치 않더라도, 결국 그들에게 더욱 좋은 것을 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면, 그분의 통치를 믿는다면 비록 낯선 것들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더 좋은 것을 주시리라 믿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처한 이시대에 요셉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비록 요셉처럼 눈에 드러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 이 위기를 이겨내고자 수고하고 애쓰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해 수년전부터 준비한 이들이 이미 곳곳에 있습니다. 신앙 때문에 감염내과에서 일해온 의사들이 있고, 돈이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평생을 이 분야에 준비해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려운 교회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돕는 이들도 있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이 시기를 감당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삶을 정비하고, 하루를 살아가는 것도 당연히 해야겠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들 요셉과 같은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이러한 변화가 우리에게 익숙치 않고, 어려움도 있겠지만 이 시대가운데 역사하는 주님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쓰임받는 이 시대의 요셉과 같은 사람들이 곳곳에 세워지길 기도합시다.

중보하며, 견디며 우리의 신앙을 지켜나갈 때 우리가 뿌린 씨앗들이 다시금 싹을 틔우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오기까지 견디며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애굽 백성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
이 기근의 시기에, 주님의 백성들과 온 세계가 함께 고통가운데 있습니다.
주님 하감하여 주시고, 주님의 구원이 속히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때를 위하여 세우신 자들에게, 주님의 성령을 부어주시고
하나님의 지혜로 이 어려움을 이겨내게 하여 주옵소서.
이 기근을 견디게 하사, 이 모든 일이 지나갔을 때에 우리를 살리신 주님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기도1
오늘 이 아침에 주님 앞에 기도하실때에 먼저 연약한 지체들을 위해 기도하기 원합니다. 애굽의 백성도 살리시는 주님께서 주님의 권속들을 살리실 것입니다. 암으로 투병중인 성도들, 수술 후 회복중인 성도들, 또한 요양병원에서 재활하고 있는 심상길 장로님, 그리고 시험을 준비하는 대입 수험생들,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이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충분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새로운 변화 속에 적응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평생 살아온 것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은혜를 더하여 주시고, 이 시기를 잘
또한 각자 품고 계신 기도의 제목을 주님 앞에 올려드린 후 세상을 향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