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빚

지금까지 교회는 빚에 대해 어떻게 가르쳐 왔을까

그렇다면 빚에 대한 신구약 성경의 가르침을 지금까지 교회는 어떻게 가르쳐 왔을까? 초대교회 이후부터 종교개혁 이전까지 교회에서는 대부분 이자 금지가 원칙이었다. 교부 암브로시우스는 고리대금은 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후 300년 엘비라 주교회의와 325년 니케아 주교회의에서 성직자들의 고리대금이 금지되었고, 5세기에 교황 레오Ⅰ세는 돈을 통해 이자를 획득하는 것은 영혼의 죽음과 같다고 말했다.

주후 626년 클리치 주교회의에서는 평신도들의 고리대금이 금지되었다. 775년 니케아회의에서는 이자 금지가 교회법으로 결정되어 공식적으로 이자를 요구하는 것은 불법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교회의 이자 금지에 대해 몇몇 국가들은 반대하였고 백성들의 경제생활에 여러 불편과 불만을 가져오게 되어 중세 후반에는 일부 국가에서 이자를 용인하게 되었다.

빚 문제가 심각해지자 1179년 제3차 라테란 회의에서는 사람들이 고리대금업자가 되기 위해 신분을 바꾼 것을 지적하면서 공개적인 고리대금을 처벌할 것을 규정하였고, 13세기 교황 이노센츠Ⅳ세는 고리대금으로 인해 농촌 경제가 황폐해지는 것을 경고했다. 중세 신학자 중에서 페트루스 롬바르두스, 안셀무스, 아퀴나스, 토마스 폰 코브함 등은 고리대금은 도둑질과 같다고 주장했다.

중세 교회에서는 대부분 이자 금지가 원칙이었으나 예외 규정도 있었고 오히려 교회가 뒤로 몰래 이자를 받기도 했다. 겉으로는 공식적으로 이자 금지를 내세웠지만 뒤로는 이자를 받았던 것이다. 앙드레 비엘레(André Biéler)는 <칼빈의 사회적 휴머니즘-칼빈의 경제신학>(대한기독교서회)에서 “교회는 이자를 받고 대부하는 것이 교회법상 금지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묘하게 시행하여 일반화되었고 16세기에 들어서면서 급속하게 증가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중세 교회는 성경의 많은 구절이 이자를 받지 말라고 말씀한다는 것과 돈은 돈을 낳을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화폐불임(不姙)설’을 받아들여 이자를 금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으로 더 많은 돈을 낳으려는 행위는 부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했다. 중세 스콜라 신학의 대부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화폐불임설을 받아들여 이자를 금했다. 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소비 물질과 비소비 물질의 구분에 따라 돈은 한 번 소비하면 그만인 소비 물질로 간주하여 이자를 금했다.

반면 아퀴나스는 이자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채권자가 돈을 빌려 주었다가 오히려 손해가 생겼을 때, 더 이익이 생기는 투자를 할 수 있는데도 돈을 빌려 주어 희생한 이득을 보상받아야 할 때, 채무자가 만기를 넘겨 연체했을 때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는 예외를 두었다. 토마스 폰 코브함은 고리대금은 시간에 따른 장사라는 이유로 이자를 금지했다. 시간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데 고리대금은 이런 하나님이 만드신 시간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것이고, 결국 이자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재산인 시간을 도둑질하는 것이라는 이유였다. 코브함은 이자가 시간 때문에 발생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한편 기독교인이 아닌 유대인에게는 이자가 허용되었다. 기독교인들이 보기에 유대인은 불신자 혹은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이자를 허용한 셈이다. 중세 당시에 유대인에게는 경제활동이 제한되어 있어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사업으로 이자를 받을 수 있는 대부업과 여러 금융 기법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유대인들이 지금도 전 세계 금융 산업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이런 역사적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칼뱅, 가난한 사람에 대한 이자는 금지하고 생산적인 이자는 허용

종교개혁자들 중에서 츠빙글리, 루터, 멜란히톤, 칼뱅 모두 이자를 허용하였다. 제네바의 경우 1527년에 이자율은 5%였고, 1538년까지도 5%였던 이자율이 1544년 이후에는 6.6%로 인상되었다고 앙드레 비엘레는 말한다. 대부분의 종교개혁자들이 이자를 허용했지만 이자의 정당성을 교리로 만든 사람은 바로 칼뱅이다.

종교개혁 시기에 와서 칼뱅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 주는 교리를 비로소 수립한다. 하지만 칼뱅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소비성 대부와 고리대금에 대해서는 이자를 금지하고 돈을 더 벌려는 생산성 대부에 대해서만 이자를 허용했다. 또 칼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화폐불임설을 거부하고 돈이 다른 상품들처럼 생산성이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칼뱅은 가난한 자에 대한 부정한 이자 수취는 금지하면서 비난했지만 성경은 모든 이자를 반대하지 않으며 만일 모든 이자를 반대한다면 상거래 활동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칼뱅은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는(눅 6:36) 예수님의 말씀은 이자의 전적인 금지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이자를 부과해서는 안 되지만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는 생산적인 대부에 대한 이자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칼뱅은 마치 약제사가 독약을 취급하는 것처럼 이자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칼뱅은 이자를 허용하기는 했지만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이자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인식했다. 칼뱅은 이자를 허용하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자를 받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과도한 보증을 요구하거나 가난한 자의 꾸어 달라는 요구를 거절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말했다.

칼뱅은 당시의 산업 및 상업 계급이 처한 실제적 상황과 필요를 고려하여 이자를 허용한 것이다. 리처드 헨리 토니(Richard Henry Tawney)는 <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한길사)에서 “칼뱅은 영원한 것은 이자를 받지 않는다는 규칙이 아니라 공정과 정의라고 해석했다”고 말한다. 칼뱅은 공평과 정의의 기초를 예수님이 말씀하신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는 마태복음 7:12의 황금률에서 찾았다.

칼뱅은 이자를 허용하면서도 죄의 현실을 감안하여 이자에 대해 무한정 자유가 아닌 규제와 통제를 주장했다. 특히 가난한 사람에 대한 이자와 고리대금은 경멸할 정도로 반대했다. 칼뱅은 법적으로 허용된다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이자를 받는 것은 부정한 짓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빚에 대한 칼뱅의 가르침도 신구약 성경이 말하는 ‘빈민 무이자 대부’와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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