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열매가 되신 주님 170416
본문: 고전15:12-20
##도입
주님께서 다시 사셨습니다. 믿으십니까? 오늘 우리의 모든 신앙은 이 고백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는 목격자들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믿기 힘들지만, 2천년 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인 동시에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건입니다. 차라리 부활 교리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더 쉬웠을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부활은 단지 설명하기 어려운 교리가 아니었습니다. 부활은 그들의 모든 것이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부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면, 부활하신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직 진리의 문턱에도 다가서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재경청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부활의 확실성과 그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제자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세계를 지배하는 헬라 문화와 그가 속한 유대 문화 속에서 엘리트로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뵙게 되었을 때, 그의 모든 삶을 흔들었고 그의 방향을 틀어 전부를 던졌습니다.
그 헌신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나아오게 되었고,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을 의심하고, 부활을 지나간 것으로 여기는 자들이 있었고 그로 인해 두려워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오히려 이방인들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도바울은 오늘 15장 전체를 통하여 부활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부활의 확실성
첫 번째로 사도 바울은 부활의 확실성을 설명합니다. 1절에서부터 8절까지는 부활의 목격자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첫번째 목격자는 막달라 마리아였지만 법적인 증언 효과가 없기에 오늘 본문에서는 베드로부터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부활을 설명하는 여러가지 이론
a. 환상
부활을 설명하는 여러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적 환상으로 설명합니다. 예수님이 환상 중에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예수님의 몸이 아니라 정신이 그들 가운데 함께 했고 그들을 통해 주님이 부활하신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그런 가능성 자체를 차단합니다. 부활의 증인이 한 두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한 두명이 환상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열두 제자가 어떻게 동시에 환상을 보겠습니까? 500명이 어떻게 볼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종교적 황홀경 상태에서 등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과 고기와 떡을 먹으며 몸으로 부활하신 주님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셨습니다. 사람들의 정신이 혼미하거나 잘 보이지 않는 밤중이 아니라, 아침에, 낮에, 저녁에 때를 가리지 않고 사랑하는 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더군다나 열광적인 자들이 아니라 낙심한 자들, 예수님을 배신한 자들, 집으로 돌아가던 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환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b. 기절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기절했었다가 깨어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 되겠습니까? 당시 가장 관심이 집중된 죄수를 로마 군인이 확인도 하지 않고 매장하게 했겠습니까? 더군다나 예수님의 죄목은 반란죄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미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고 다니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는 자들은 확실하게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마지막에 창으로 찔러서 그 몸의 물과 피를 다 빼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무덤도 이틀을 지켰는데, 어떻게 다시 소생할 수 있겠습니까? 말이 안되는 주장입니다.
c. 제자들의 거짓말
당시 유대인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을 배신하고 흩어져 있었습니다. 로마 당국과 대제사장 무리가 지키고 있는데 어떤 무장 세력이 군인들을 물리치고 시신을 탈취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시체를 숨겨놓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평생에 걸쳐 제자들은 끊임없이 부활을 증언했고 그 일에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기절설이든, 시체를 훔쳤든 말이 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을 팔아버리고 배신했던 제자들이 반 죽어 있는 예수님을 보고 다시 살아나셨다고 공공연하게 돌아다닐 수 있겠습니까? 죽을 때까지 목숨을 버려가면서 까지 부활을 증언할 수 있겠습니까? 부활하셨다는 것보다 몇 백명이 죽을 때까지 거짓말하며 평생을 바쳤다는 것이 더 믿기 힘든 일이지 않습니까?
###부활을 설명하는 유일한 이론: 그가 살아나셨다
부활은 아무리 인간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려고 해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만 죽었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제 아무리 그럴 듯한 주장도 이미 2천년 동안 다 기각되었습니다. 유일한 설명하는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살인의 전문가들이 확실하게 그분을 죽였고, 많은 이들 눈 앞에서 그렇게 숨을 거두셨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제자들과 500여 형제들에게 그분이 나타나셨습니다.
##2. 부활의 의미
그렇다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슨 의미입니까?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죽었다 살아나는 사람 이야기가 있고, 구약성경에도 선지자가 죽은 자를 살리는 일화가 있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그럴 수 있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그들의 삶을 바꾸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을 저승에서 살려오는 이야기가 그리스 신화에 그렇게 많은 들, 그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그 이야기를 믿었습니까? 그렇게 하지도 않았고, 그럴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그들의 삶과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갔던 제자들과 그분을 죽이는데 내어주었던 유대인들은 왜 돌이켜 그들의 삶을 이 길에 바쳤습니까? 부활은 그들에게 무슨 의미였습니까? 사도바울은 부활의 확실성에 이어 부활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 a.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을 약속한다
부활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신기한 사건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다시 살리실 것을 약속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모든 성도들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사건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이해하였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을 다시 일으키실 것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부터 약속된 부활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이미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리신 것을 보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진리이며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도 부활이 주어질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기적이었다면 이 부활은 그들과 상관없는 신기한 일로 끝났겠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부활은 보증금과 같습니다. 계약금인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살리실 것이란 증거를 그들에게 먼저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고, 또 그렇게 됨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동시에 이 일은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도 부활이 일어날 것을 약속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b. 예수를 따르는 믿음이 헛 것이 아니다
두번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들이 지금까지 하는 모든 것이 헛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인이야 말로 가장 불쌍한 자들일 것입니다. 무엇때문에 이 믿음때문에 목숨을 버리며, 도망다녀야 하며, 손해를 봐야했습니까? 부활이 없다면, 이 땅에서 삶이 전부라면 성도들이야 말로 가장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바울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부활이 없으면, 가장 현명한 선택은 이번 생에서 최대한의 쾌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남 눈치보지 않고, 도둑질을 하든, 간음을 하든지 자기 정욕을 채우는 삶을 살다가 죽으면 됩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자들은 영생을 위해 절제합니다. 오히려 손해보는 길을 택합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왜 그런 길을 갑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우리에게 약속된 것이라면 우리가 하는 이 모든 일들이 어리석은 일이 아니라 가장 지혜로운 일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손해를 보고,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욕을 먹는 그 모든 일들이 어리석고 불쌍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 감수했던 그 모든 손해를 주님께서 뒤 엎어 버리실 것이라고 증명하는 것입니다.
###c. 더 이상 죽음이 우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더 이상 죽음은 더 이상 성도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불의한 권력과 악의 세력들이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는 우리의 목숨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의한 권력과 악한 종교인들에게 죽임당하신 예수님을 주님께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 세상에 그 무엇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죽음조차도 성도들을 하나님으로부터 갈라 놓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어떤 위협에 움츠러 들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사단과 이 세상의 권세는 성도들을 위협할 수 있는 마지막 무기를 잃어버렸습니다. 죽음으로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협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앞서 가신 예수그리스도를 따라, 부활하신 그 분의 뒤를 따라 사단의 왕국을 정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손에 칼과 창이 없지만, 오히려 위협을 당하고, 두들겨 맞고, 억울하게 죽게 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막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미 사단의 왕국은 초토화가 되었습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악의 세력이 사나운 이를 드러내며 성도들을 위협하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우리를 붙잡아 두지 못합니다. 부활을 굳게 믿을 수록,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도들을 이 세상이 두려워 합니다.
그들의 손에 칼과 창이 없음에도,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는 자들, 이 땅의 권세가 아니라 하늘의 권세에 순종하는 자들을 누가 감히 다룰 수 있겠습니까? 부활의 소망은 성도들에게 이 세상 권세로는 어찌할 수 없는 참된 자유를 선물로 줍니다.
##3. 부활 신앙
그렇다면 주님의 부활이 사실이고, 그 부활로 말미암아 죽음이 우리를 주장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a. 경축하는 신앙
부활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셨고, 우리가 그 승리를 누리게 되었다면 우리가 할일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승리를 경축하는 것입니다. 그 승리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홀로 괴로워하며 도를 닦아 더 높은 경지에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승리하신 주님의 뒤를 따라가며 그 승리를 기뻐하며 그 승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부활의 신앙, 경축의 신앙인 것입니다.
우리가 왜 주일에 모입니까?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안식후 첫날에 주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날을 삶의 기준점으로 삶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하나님이 창조하고 안식하신 날을 기억하였다면,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다시 살리신 이날, 새 창조를 시작하신 이 날을 기준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해도 괴로운 일이 있다할지라도, 우리의 신앙을 지키기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승리하신 주님을 믿고 따라가는 것이 바로 부활의 신앙인 것입니다.
### b. 씨를 심는 신앙
우리가 믿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다시 살리신 것처럼 우리가 죽어도 주께서 다시 살리실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첫열매가 되셨기에, 우리도 지금의 삶을 심었을 때 더 좋은 것으로 받게 될 것을 믿습니다. 농부들이 봄에 씨앗을 심지 않습니까? 이제 씨나락을 준비하실텐데, 그 나락은 이미 겨울을 지났습니다. 죽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나락을 모판에 뿌렸을 때, 땅에 심게 되었을 때 어떻게 됩니까? 버려진 것처럼 보이지만 더 많은 열매로 더 윤기넘치는 새로운 곡식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우리가 보잘 것없는 삶이지만, 이 삶을 주님을 위해 내어 드릴 때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에게 돌려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신앙인 것입니다. 농부들이 수없이 경험했던 그 일이 이제 우리에게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 사도바울의 부활신앙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을 때, 그 인생의 전부를 던져서 그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비록 모든 것이 보장된 유대 엘리트의 길이 아니라,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고, 그가 경멸하던 길이었지만 그 길을 갔습니다. 이는 그가 부활의 주님을 뵙게 되었을 때 가장 가치있는 것을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단 한번밖에 없는 삶을 헛된 곳에 던지고 있던 자신을 발견하였고, 가장 가치있는 일에 삶을 던지게 된 것입니다. 그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현재
주님의 부활은 단지 교회의 절기로 기념하는 날 정도가 아니라, 우리 신앙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믿음 위에 모인 자들입니다. 교회는 부활을 믿는 자들의 공동체요, 그 증인들의 공동체입니다. 그 사건을 보고 경험한 자들, 부활하신 주님을 뵌 자들을 통해 교회는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 부활을 믿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이 승리의 약속, 첫열매가 되어 보여주신 부활의 사건은 우리의 신앙의 근거요 우리의 삶의 시작이 됩니다. 그 부활 신앙에 서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죽음에서 일으키신 것처럼, 어쩌면 죽은자와 같은 우리의 삶에도 주님은 역사하실 것입니다.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이 약속에 대한 최선의 반응은 주님을 향해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미 주님 안에서 떠나보낸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께서는 첫열매가 되신 예수님처럼 그들을 다시금 일으키실 것입니다. 한 번 밖에 없는 삶을 가장 가치있는 일에 드렸던 자들, 그렇게 주님 안에 거하였던 자들을 주님께서는 잊어버리지 아니하시고 주님께서는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지금은 쇠약한 육신에 고통받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진 인생 길에 닳아버린 그 육신을 주님께서는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게 하실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고통 중에 낙심한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이미 승리의 약속이 주어졌고 그 보증이 바로 첫열매 되신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정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 잠자던 자들도 주님께서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실패하고 끝난 것 같은 인생에도 주님께서 그 삶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헛된 것이라고 속삭이는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는 일이 바로 씨를 심는 일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다함께 주님의 부활을 찬양하며 주님의 승리를 경축하며 노래하길, 그 길을 따라 즐거워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