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대 맬서스는 [인구론]에서 식량 공급이 인구 증가를 따라 잡지 못할 것을 경고하였습니다. 20세기 초만하더라도 이런 비극적인 전망은 현실이었습니다. 오늘날의 화학비료가 개발되기 전에는 천연재료로 비료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유럽에서 비료 재료로 쓰던 칠레 초석이 고갈되면서 식량 증산이 불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칠레 초석은 19세기 후반 50년간 오늘에 석유처럼 취급되던 자원이었습니다. 그래서 각 나라들은 칠레 초석을 대체할 질소비료를 개발하는데 불이 붙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질소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공기의 78%가 질소입니다. 산소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질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질소를 비료로 쓰려면 벼락이 쳐서 산소와 반응하거나 퇴비처럼 배설물의 형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대규모로 생산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독일의 과학자 하버라는 사람이 촉매를 이용해서 대량으로 질소를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하게 됩니다. 기술사학자에 따르면 이 기술이 20세기 곡물 생산량에 기여한바가 8할은 된다고 합니다. 이 기술 덕분에 인구가 19세기보다 4배가 늘었어도 이전보다 잘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기술이 퍼져서 일제 시대에는 함흥에 질소비료 공장이 세워지고, 한국전쟁이후에 충주 비료 공장이 미국원조 1호 공업시설었습니다. 우리가 먹고 살 수 있게 된 것도 이 하버라는 과학자 덕분입니다.
공기 중에서 석유를 뽑아 내는 기술이 있으면 얼마나 돈을 벌겠습니까? 그런데 당시 석유와 마찬가지인 질소비료를 공기 중에서 대량으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였으니 하버는 엄청나게 벌었을 것입니다. 이 기술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더욱이 하버는 비료뿐만 아니라 독가스도 개발하여 큰 돈을 벌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교착상태에 이르자 하버는 독가스 사용을 제안합니다. 하버는 독가스 개발과 활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습니다. 그가 개발한 독가스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이 사실이 너무나 괴로워서 남편을 말렸지만, 듣지 않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이었던 하버는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자신은 외국으로 망명하였지만 떠돌아 다니다가 스위스 바젤에서 외롭게 죽어갔습니다. 탈출하지 못한 그의 친척들은 그가 강제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의 동족 유대인들은 강제 수용소에서 독가스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버는 많은 사람을 굶주림에서 해방시킨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죽인 사람으로 남았습니다. 자기 가족들도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인류의 은인으로 남을 수 있었지만, 저주받은 과학자로 남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기에, 그의 기술은 효과적으로 살리는데가 아니라 효과적으로 죽이는데 쓰이고 말았습니다.
출처: 진성원,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서울:인물과사상사, 2012, 497쪽-510쪽 요약
여인형 교수, 노벨스토리- 프리츠 하버와 화학전 (http://www.nobel.or.kr/ 한국과학문화진흥원)